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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없어도 됩니다

디딤 · 2026년 9월 5일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은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흙길 위를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작게 보이고 앞쪽에서 옅은 빛이 들어오는 수채화

한쪽은 무릎을 꿇었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갸우뚱했습니다. 그가 먼저 다가온 것은, 그 갸우뚱한 마음이 사라진 뒤가 아니었습니다.


산 위에는 두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몰입하고 몰두해서 일하고, 앞을 보고 달려가다 멈춰 서서 돌아보면, 잠시 멍해져서 필름이 끊긴 것처럼, 아니 방향을 못 찾아 팽그르 도는 나침반처럼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모릅니다. 누구도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가던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분명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의 어느 산을 오르던 열한 사람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다니던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지난 며칠 사이 겪은 일들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를 만나자 어떤 마음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서, 또 어떤 마음은 여전히 갸우뚱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두 마음. 한쪽이 경배를 마칠 때까지 다른 쪽이 의심을 그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정리하고 누가 못했는지 나누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란히, 함께 있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 속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사자 왕을 만나기 전, 그가 어떤 존재인지 미리 듣습니다. 안전한 분은 아니지만 좋은 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자 왕이 곧 그라는 뜻은 아니지만, 위대한 존재 앞에 설 때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과 끌림이 동시에 있다는 것만은 낯설지 않습니다. 산 위의 열한 사람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안심할 수 없는 채로, 그런데도 끌리는 채로.

준비가 되면 연락하려 했습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이름이 하나쯤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까웠는데 어느새 멀어진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빠서 연락을 미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먼저 연락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사이가 서먹해진 채로 너무 오래 두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좀 더 편해지면, 뭐라고 말할지 정리가 되면, 그때 연락하자.

그런데 그 “그때”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마음은 편해지지 않고, 할 말은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이름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되어 갑니다. 준비가 되면 나서겠다는 다짐이, 어느새 그 사람을 피해 다니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는 것. 미룬 것은 연락 하나였는데, 어느 틈에 사람이 뒤로 밀려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이름을 마주칠까 봐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가는 일. 피하는 힘은 생각보다 셉니다.

그 산 위의 사람들도 비슷한 처지였을지 모릅니다. 의심이 다 걷히고 나면, 그때는 나설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먼저 걸어오셨습니다

복음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순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의심이 걷히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가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 걸음은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도, 갸우뚱한 사람에게도 똑같았습니다.

이 장면을 마주할 때면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위험한 물건을 없애러 갈 사람을 정하는 자리에서, 힘 있는 이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가장 작고 약한 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가겠다고, 다만 자기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를 일어서게 했는지, 이야기는 답하지 않은 채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

그 산 위의 사람들에게는 그 답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일어서게 한 것은 스스로 다진 결심이 아니라 먼저 다가온 걸음. 확신이 서고 나서야 다가오신 것도, 자격을 증명하고 나서야 다가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흔들리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그가 먼저 걸어왔습니다. 그렇게 다가온 다음에야, 비로소 말을 시작했습니다.

문턱은 이미 넘어져 있었습니다

그 흔들리는 마음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확신이 서고, 자격이 갖춰지고, 경계가 안전해진 다음에야 나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마음을 문제 삼는다고 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채비를 갖추는 일은 당연하고 필요합니다. 다만 그 문턱이 영영 넘을 수 없는 자리처럼 굳어질 때가 문제입니다. 자격이 갖춰지는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고, 문턱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만 길어집니다. 그사이 우리는 준비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 위에서, 그 문턱은 이미 넘어져 있었습니다. 다가온 그가 먼저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격을 요구한 다음 문을 연 것이 아니라, 문을 열어 놓고 나서 자격 없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한 순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순서가 아니면 아무도 그 산을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격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금도 갈릴리 어딘가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 문턱이 그렇게 넘어져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은 스스로 움켜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다른 산 위에서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나에게 한 번만 무릎을 꿇으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다른 길을 지나왔습니다. 아무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죽음을 지나고, 다시 살아나는 길을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지나온 뒤에야 모든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조건 없이, 이미. 같은 산이었지만 다른 길이었습니다. 지름길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을, 가장 먼 길로 돌아 받으신 셈입니다. 그 먼 길에는 어떤 지름길도 대신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습니다.

값은 그렇게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러니 그가 사람들을 부른 것은 아직 치러지지 않은 값을 갚으라는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치러진 값 위에 서라는 말이었습니다. 받는 사람은 갚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값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미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담은 이미 허물어졌습니다

그렇게 치러진 값 위에서,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나와는 다르다고 여겨 온 사람들에게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말이었습니다. 평생 넘지 않던 경계,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선을 그어 온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요구로 들으면 무겁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요구이기 전에 선언이었습니다. 가로막고 있던 담이 이미 허물어졌다는 선언입니다. 그 말은 담을 넘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담이 더 이상 거기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말이었습니다.

경계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지켜 줍니다.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익숙한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담이 이미 무너진 다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은, 지키는 일이 아니라 없는 것을 지키는 일이 됩니다. 헐린 담 앞에서 계속 파수를 서는 셈입니다. 누구를 위해 서 있는 파수인지도 이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키려던 것은 안전이었는데, 남은 것은 거리뿐입니다.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이었습니다. 성공하든 흔들리든, 어떤 순간에도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 앞에 명령이 있었고, 그 뒤를 약속이 받쳤습니다. 그런데 뒤에 온 그 약속이 앞선 명령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도 종종 그 산 위의 마음을 느낍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무언가를 피해 다니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미뤄 둔 이름은 여전히 미뤄진 채로 있습니다.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 산 위에서 있었던 일은, 확신이 서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흔들리는 채로 다가오신 그가, 흔들리는 채로 나선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계셨습니다. 그 곁에는 문턱도, 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다만 함께 있겠다는 말 하나였습니다.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말은, 그 말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확신이 없어도 됩니다. 그 자리에, 이미 그가 먼저 와 계십니다.


이 글은 2026년 9월 6일 디딤교회 주일예배 설교 「결과와 상관없이 함께한다는 것」(마태복음 28:16-20)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위험한 물건을 없애러 갈 사람을 정하는 자리」 장면은 J.R.R. 톨킨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제2권 「엘론드의 회의」의 내용을 간접 인용한 것입니다.

「사자 왕을 만나기 전에 그가 어떤 존재인지 미리 듣는」 장면은 C.S. 루이스 『사자와 마녀와 옷장』(나니아 연대기)의 내용을 간접 인용한 것입니다.